39년 전. 1984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대 농업과 대학 농화학과. 나는 너무 기뻤지만, 어라? 반갑지 않은 아이들이 더, 아니 훨씬 많이 보였다. ● 나는 약학부에 가려고 했는데 학력 고사를 보는 날 컨디션이 나빠서… 그렇긴 ● 나는 농과 대학의 일도 생각 못했는데, 탐텡이이…이래봬도 ○ 좋은데, 표정 관리. 두드러지게 좋으면 없을 것 같아서. ○ 뭐가 뭔지 몰라서. 이런 느낌이었다. 농과 대학만 했지? 다른. 법대에 가야 하는데 학력 고사 점수로 사회학과에 왔다는 아이, 천문학과에 가고 싶은데 집의 압력으로 의대(의학과)에 왔다는 아이, 어쨌든···대학 입학 때부터 한국병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한국인은 불행인가. 한국의 민족. 그 한을 뭔가…이래봬도 요즘도 의치 한 약수의 깃발이 막강하다요. 우리 때는 의치 한약였지만, 황우석(팬·우석)교수의 때는 수의학과도 같은 반에 올랐다. 의치 한약이 붙은 아이들도 상당수가 이 길은 아닐까 생각하나!!!…중도 하차하더라. 자신을 모른다는 것. 자신을 아는 일이 얼마나 큰 것? 나에게 무엇이 가능한가.(현재의 능력)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것?(소질과 잠재력)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결국 귀결하는 것은 『 너 자신을 알라 』이었다. 나 같은 아이가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면, 진로 지도를 어떻게 받았을까? 대학 대학원에 가라고 했나? 어떤 길을 가라고 했어?-김·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