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나오고, 가끔 이용하는 프로그램이 각 도시의 시티 투어입니다. 우선은 운전에서 해방되어 그 지역의 본질적인 볼거리가 모두 포함되며, 가격까지 싸고 너무 느긋한 여행을 즐기려는 경우가 아니면 시티 투어 상품을 잘 이용하려고 합니다. 이번 연천 시티 투어는 5월 10일부터 공식적으로 출발하는 상품인 “평화와 생명의 땅, DMZ연천 시티 투어”를 사전에 다녀온 감상입니다. DMZ는 작년 사업을 하겠다고 사전 조사를 해놓고 갈 만한 곳을 들어 놨는데 이번 여행지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곳이 많아서 더 기뻤습니다.공덕 역을 9시에 출발한 버스는 중 기착지의 고양시 정 발산 역에 들렀다는데, 중간 탑승자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약 2시간 정도 돌려서 연천군 백학면 행정 복지 타운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중서부 전선 GOP까지 접근하는 프로그램이므로 참가자는 투어 2일 전까지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등을 제출해야 하며 당일은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하는 것이 다른 후방의 도시 관광과 차이가 있습니다. 스태프 분들은 여기서 행정 절차를 밟아 있었습니다. 백학면의 관문인 이곳에는 2008년 7월에 완공한 항일 독립 운동 기념 탑과 연천 출신으로 1905년 을사 조약 체결 후 의병을 일으키고 활약한 왕희 종의 병장의 동상과 함께 연천군 출신 및 연천군에서 활동한 50명의 항일 독립 투사의 이름이 새겨지고 있습니다.공덕역을 9시에 출발한 버스는 중간 기착지 고양시 정발산역을 들른다고 하는데 중간 탑승자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약 2시간에 걸쳐 연천군 백학면 행정복지타운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중서부전선 GOP까지 접근하는 프로그램이므로 참가자는 투어 2일 전까지 성명, 생년월일, 연락처 등을 제출해야 하며 당일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는 것이 다른 후방 도시관광과 차이가 있습니다. 스태프분들은 여기서 행정절차를 밟고 있는 것 같았어요. 백학면 관문인 이곳에는 2008년 7월 완공된 항일독립운동기념탑과 연천 출신으로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왕희종 의병장 동상과 함께 연천군 출신 및 연천군에서 활동한 50명의 항일독립투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이곳이 북쪽임을 실감하는 것이 4월 말일인데 벚꽃이 만개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로 건너편에 어떤 걸음걸이가 되어 있는지 길이가 적혀 있었기 때문에 렌즈를 뽑아 보았습니다.’6·25 영웅 아사히도’라는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길 이름이 정말 의미심장해요.’6·25 영웅 아사히도’라는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길 이름이 정말 의미심장해요.상승전망대OP(제1터널)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잠시 있는 초소에 그쳤고 GOP까지 안내하는 군인 한명이 타고 상승 전망대 GOP까지 함께 이동했습니다. 짐작이라도 저희가 많이 앞쪽으로 넘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는 동안에 꾸불꾸불한 산길과 시설물을 보면 전방이라는 긴장감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25사단 마크는 “아버지가 여기 군 공사를 조금 한 적이 있어 낯이 익습니다. 5이 3명의 이 표지석은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탐방지가 전방 부대인 만큼 관람객도 지급되는 조끼를 착용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곳에 오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꼭 하나 있습니다. 최전선에서 민간인 표시되지 않도록 위장해야 하며 안전 때문에 착용하면 지급하는 베스트, 입지 않는 사람은 꼭 1두 사람 있었다는 거에요. 스태프 분들도 2번이나 말했는데 안 듣는 척하면서 자신의 패션 코드와 안 맞서 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듣지 않는 어른들 있습니다. 그런 사람, 왜 이런 곳에 오는지 몰랐죠. 관광지, 특히 이런 곳에서는 정한 규칙에 따르기 바랍니다.상승비룡부대 위관장교 진행으로 먼저 부대소개 영상을 관람했습니다. 육군의 BEST PRIDE 제25보병사단, 최전방 경계부대, 74년 제1터널 발견, 삼미천 작전, 최근 GP 철수 등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저희가 흔히 DMZ라는 곳이 어떤 곳이냐는 건 한 장의 사진으로 잘 설명해 주셨어요.영상 관람 후 외부에서 북측의 GOP등을 망원경으로 관찰했습니다. 외부는 촬영 금지라서 사진은 없습니다. 이런 때, 망원경을 들여다보면 앞으로 보이는 끝없는 시야가 그렇게 먼 곳도 아닌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렇게 단절하고 살아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잠시 하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화해 모드가 되면서 남북이 각각의 GP를 철수하고 있습니다. 이건 너무 어설픈 액션은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아주 믿음직한 장교가 완벽한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안심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한국과 북한의 주요 도시 간의 거리가 표시된 계측 표가 보입니다. 서울이 52킬로이며 반면 개성이 31㎞불과 30분에서 북한에 갈 가능성도 있다는 거리입니다.제1땅굴은 비무장 지대 안에서 발견된 출입 못하는데, 상승 전망대 OP입구에서 모형으로 관람합니다. 이때는 1972년에 7.4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한 뒤 남북 적십자 회담이나 남북 조절 위원회 회담 등을 통해서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계속하는 척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습 남침을 위한 터널을 뚫고 있었단 말이에요. 북한은 1972년 5월부터 휴전선 전역에서 터널을 파기 시작했는데 제1땅굴 발견 이후 제2,3,4터널이 발견되었어요. 사단의 수색 팀이 근무 중에 땅에서 이유 없이 수증기가 오르고 파고 보니 불과 45cm아래에 가로 1.2m, 높이는 1m도 안 되에 사람이 설 수 없는 높이의 터널인데 길이 3500m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곳을 이용하고 기습하면 고랑포에서 의정부를 거쳐서 서울로 향하는 방향이래요. 1시간에 몇명의 병력을 운반했어?어쨌든 소름이 돋은 터널이었습니다.영상을 보면서 25사단의 구호를 적어 봤지만 일격 필살 25사단, 서부 전선 수호자, 육군 수로 최정예 부대 인원 보장 안전 사단, 혁신 선도 사단, 서부 전선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 정말 믿음직한 단어입니다. 이날 만난 장병들도 모두 씩씩하게 든든한 것처럼 보였어요. 건물의 한쪽 벽면에 대한 숫자가 궁금해서 찍어 보았습니다. 언제 무엇부터 1,237일째인지 모르지만, 향후의 모든 작전 임무 수행에도 다치지 않고 완전 작전을 이루길 응원합니다.영상을 보면서 25사단 구호를 메모해 봤는데 일격필살 25사단, 서부전선 수호자, 육군 수로 최정예부대, 인력보장안전사단, 혁신선도사단, 서부전선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 정말 믿음직한 단어입니다. 이날 만난 장병들도 모두 씩씩하고 듬직해 보였습니다. 건물 한쪽 벽면에 붙은 숫자가 궁금해서 찍어봤어요. 언제부터 1,237일째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모든 작전과 임무 수행에도 다치지 않고 완전 작전을 이루길 응원합니다.종점식당 런치점심은 백학면에 내려가서 적당한 식당을 찾아 개별적으로 식사를 합니다. 이날은 근처에 있는 종점 식당에서 육개장을 한 그릇씩 했어요.점심은 백학면에 내려가서 적당한 식당을 찾아 개별적으로 식사를 합니다. 이날은 근처에 있는 종점 식당에서 육개장을 한 그릇씩 했어요.종점식당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백로 18031-835-5056식사 후에는 1시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져 백학면 백령리 제일번화가를 잠시 걸었습니다. 마을에 평일인데 사람이 거의 안 보이네요. 커피 한잔 하려고 커피전문점을 찾았는데 문을 닫아서 바로 그 오른쪽에 백학역사관이 있어서 잠시 구경을 하고 나왔어요.식사 후에는 1시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져 백학면 백령리 제일번화가를 잠시 걸었습니다. 마을에 평일인데 사람이 거의 안 보이네요. 커피 한잔 하려고 커피전문점을 찾았는데 문을 닫아서 바로 그 오른쪽에 백학역사관이 있어서 잠시 구경을 하고 나왔어요.백학 역사 박물관얼핏 본 것만으로도 뭔가 전문적인 박물관처럼 안 보이죠? 건물의 지하 공간을 빌려서 연천군 두우리 시장에서 열린 항일 만세 운동 이야기, 한국 전쟁 당시 연천 베가스의 싸움에서 활약한 군마 레 크레스의 이야기를 벽화에 그리고 두었습니다. 전쟁 당시 남아 있던 유품과 유물, 지역 주민이 수집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문화재적 가격보다 역사에서 그 가치는 크다 하겠습니다. 나중에 재정적으로 자유로워지면 이 박물관도 지상으로 진출할 수 있을까요?딱 봐도 뭔가 전문적인 박물관 같지는 않죠? 건물 지하공간을 빌려 연천군 두우리시장에서 열린 항일 만세운동 이야기, 한국전쟁 당시 연천 베가스 전투에서 활약했던 군마 레클레스의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 놓았습니다. 전쟁 당시 남아 있던 유품과 유물, 지역 주민들이 수집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문화재적 가격보다 역사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재정적으로 자유로워지면 이 박물관도 지상으로 진출할 수 있겠죠?녹슨 철모도 수거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철모는 남아 있습니다만, 철모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고 한쪽 전단 전시박스에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가 했다는 말이 적혀 있는데 사실일까.백학역사박물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528-33010-9081-5040경순왕릉(사적 제244호)백학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버스로 약 20분 이동하여 한적한 곳에 있는 신라의 56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주차장은 넓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조선시대 왕릉 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지만, 그보다 빛나는 신라의 마지막 왕릉으로 가는 길은 쓸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왕릉의 위치에 대한 원칙은 ‘경국대전’에서 율법으로 정해졌고, 도성에서 10리 밖, 100리 이내로 정해졌으며, 왕릉에 이르는 길도 신도, 어도라 하였고, 홍살문에서 능까지의 길도 달랐습니다.그런데 경주에 가보면 경주에 있는 능은 홍살문도 없고 답도에 대한 구분도 없습니다. 여기도 그래요? 다만 시멘트가 길어서 경내 잔디밭으로 이어집니다. 길 끝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묵는 사무실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재실, 비각 건물과 구릉 위에 작은 봉분과 한 쌍의 석양과 망주석, 장명 등이 있고 곡창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경주에 있는 왕릉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꾸며진 왕릉입니다.저희와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에 따라 예시를 갖추어 해설을 듣기로 했습니다. 임금님께는 4배 올리지만 이번에는 평절에서 4배 올리고 나서 해설을 들었습니다. 왜 4배인지 모르는 어른들도 많네요.분구의 앞에 있는 낮은 비석에는 신라 경 순 임금의 사기란 한문이 쓰이고 있습니다. 왜 신라의 왕의 무덤이 여기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경 뒤 왕은 재위 9년 만에 왕건에게 나라를 통째로 주면 백성을 지키지 못한 혐의로 경 순 임금의 장남 중(마의 태자), 덕주 공주는 큰 원한을 품고 월악산을 거쳐서 금강산에 들어갔다는, 막내 아들은 화엄사에서 브라마 공과는 법명으로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경 뒤 왕은 왕건에 의해서 태자보다 위의 정규 승 공에 봉해지고, 유화 궁이 하사되어 왕건의 장녀 낙랑 공주와 결혼하는 등, 왕건의 정략으로 개경에서 인질로 잡고 있었습니다. 고향 땅을 그리며 신라에 가는 길목인 여기에 나오고 남녘 땅을 바라보는 바람에 이곳에 무덤을 지었다는 이야기와, 경 순 임금 사후 장례 행렬이 경주에 도착하면 민심이 동요하는 것을 우려하고 개경에서 100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들어 여기에 모신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현재의 능에 “신라경순 임금의 능”(신라경순 임금 지릉)이라고 새긴 비석은 조선 영조 23년(1747)에 개축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배면에 5개 글자가 새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왕(경 순 임금)는 신라 제56대 왕으로, 후당의 아마기 2년의 무사(928년)에 경애 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며 키요 야스 즉 난(935년)에 나라를 고려에 넘겨줬다. 송 태평 흥국 무인년(978년), 즉 고려 경종 3년 4월 4일에 죽자 시호는 경 순서라는 왕의 예로서 장단 남쪽의 고부 8리의 계좌 방향의 언덕에 묻혔다. 지행 순더 영모 의열(영조의 존호)성상 23년 사다 묘년(1747년)에 재건”라는 내용입니다. 능은 소박하지만 신라 왕릉에는 없는 곡창이 분구를 덮어 분구를 둘러싼 32의 병풍석, 분구 앞의 비석이나 쵸-메이 등, 석양, 노조미 주석 등도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석에 파놓은흔적은 한국 전쟁 당시 여기 임진 강변의 격전지 중 격전지였던 것 같지만, 그 때 총탄 흔적 같다고 합니다.왕릉 옆에 서 있는 비각에는 경순왕릉 추정 신도비라고 전해지는 대리석 비석이 시멘트로 칠해져 있습니다. 고랑포구 주변에 있던 것을 1976년 고랑포초등학교로 옮겼다가 영조 24(1748년) 후손들이 발견한 신도비로 추정하고 1986년에 옮긴 것입니다. 마모가 너무 심해서 내용은 전혀 모르겠어요.신라의 한때 지금의 서울까지 진출하고 북한산에 진흥왕 순수 비를 세울수록 국력과 영토가 넓었던 것이지만 나라를 통째로 넘기고 패왕이 되면서, 인질의 신세가 됐고 죽음에 묻히는 장소조차 맘대로 못 했습니다 게다가 경 순서 왕릉이 있는 이 곳은 한국 전쟁 이전은 장단 군이었지만, 휴전선에 물러나연천군이 된 덕분으로 남방 한계선이 가까운 사전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찾지도 못 했습니다. 신라의 경 순 임금의 마지막은 살아 있어도 외롭고 죽어 누운 곳도 사람들이 생각하게 찾지 않는 곳에서 망국의 한을 다스리며 누워서 있습니다. 아들 마의 태자와 덕주 공주의 이야기와 겹치면서 몹시 안타까운 마음에 남습니다. 연천 경 순서 왕릉 주소:경기도 연천군 남면액 나미 우라 사토야마 18-2번지 개방 시간:오전 10시~오후 6시연천 고랑포구역사공원경 순서 왕릉에서 차로 약 500m거리에 있는 다렌 가와 후 루온 나미 우라구 역사 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걸어도 좋은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낭 포구는 삼국 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임진강을 통한 물자 교류의 중심적 역할을 해왔던 나루터입니다. 1930년대에는 개성과 한성의 물자 교류 때문에 화성 백화점의 분점이 들어서게 성장하는 항구 도시였지만 한국 전쟁과 남북 분단으로 쇠퇴한 곳입니다. 이곳에 위치한 렌 가와 후 루온 나미 우라구 역사 공원은 낡은 랑포구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을 재현한 장소로 시대에 맞추어 AR, VR을 이용하고 역사와 안보 체험이 가능한 장소에 했다. 정식 개관을 앞두고 활발하게 주변 정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요. 바닥의 보도 블록 사이에 풀 한포기 없는 것은 왜요?다렌 가와 후 루온 나미 포구 역사 공원의 넓은 마당 한가운데는 말 한마리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이곳이 나루터라 지고 있는 막판의 짐이 상인들의 각 정도 되어야 하는데 이 말은 뭔가 다른 것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말의 이름”레 크리스”계급은 “하사”입니다. 제주산 말로 현재의 서울숲인 성수동 서울 경마장(뚝섬 경마장)에서 “아사히”이란 경주마로 활동했었습니다. 개의 뿔도 없이 살고 있던 시대의 1952년에도 경마가 있었다고는 놀라움입니다. 전쟁 중에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여동생의 의족을 하고 주기 위한 청년부터 미국 해병대 에릭·페터슨 중위가 250달러를 주고 산 말입니다. 해병 1사단 제5연대 대전차 부대에서 탄약 수송 병으로 훈련을 받아 기동성이 뛰어난 레크 리스는 산악 지형에 통신선을 설치하는 임무에서 일반 병사 12명의 역할을 했습니다. 전쟁 막판 1953년 3월 미국군과 중공군의 마지막 전투에서, 레 크리스는 하루 51개의 전장을 돌며 포탄을 날랐습니다. 베가스아 고지전으로 알려진 5일 전투에서, 레 크리스는 약 4000킬로의 탄약을 386번이나 날랐습니다. 왼쪽 눈 위를 다친 왼쪽 옆구리가 터지등 2번 부상했는데 치료 후에 다시 복귀하고 부상자를 후송했습니다. 레 크리스는 1954년에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의 샌 프란시스코로 이송된 미국 해병대 1700여명이 줄지어 기념 행진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이날 이후 레크 리스에 향후 그 외엔 아무것도 등에 싣지 말라고 명령하고 전쟁 영웅에 대한 예우를 하셨다고 합니다. 1959년에 미 해병대 하사에 공식 진급도 했는데 1960년 11월에 명예 제대를 하고 캘리포니아 주 펜들턴 해군 기지에서 여생을 보낸 뒤 1968년 5월에 20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미국 내에는 총 3개의 레 크리스 상 버티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 정전 60주년 2013년 버지니아 주 해병대 박물관에 세워지고 2016년에 빵 돌턴 해병 기지에 2번째, 3번째는 경주마 최고의 명예의 전당인 켄터키 주 렉싱턴 호스 파크에 전설의 경주마들과 함께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액자 속 사진이 2018년 5월 경주마 최고 명예의 전당인 켄터키주 렉싱턴 호스파크에 설치된 레크리스 동상의 모습이군요.여기 역사 공원에는 5구역에 전시 공간이 나뉘어 있습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있어”만남의 순간”왼쪽에 가면 1930년대의 시장가를 표현한 “삶의 찰나”오른쪽에 “역사와 문화의 찰나”구역이 있어 2층에는 “오감의 찰나”이라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만남의 순간에는 시설 이용 정보를 제공하는 인포 데스크와 휴게소가 있습니다. 삶의 자라 구역에는 코랑포그날토와 시장 거리를 재현하고”용쵸은코랑포그”라는 앱을 내려받아 일정 지점에 서서 앱을 실행시키면 그림 속에서 AR를 통해서 사람들이 등장하거나 도깨비도 등장하곤 합니다.이곳 역사공원에는 5구역으로 전시공간이 나뉘어 있습니다. 인포데스크가 있는 ‘만남의 찰나’, 왼쪽으로 가면 1930년대 시장가를 표현한 ‘삶의 찰나’, 오른쪽으로 ‘역사와 문화의 찰나’ 구역이 있고 2층에는 ‘오감의 찰나’라는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남의 순간에는 시설 이용 정보를 제공하는 인포데스크와 휴게소가 있습니다. 삶의 자라 구역에는 고랑포구나루터와 시장가를 재현하고 ‘영촌고랑포구’라는 앱을 다운받아 일정한 스팟에 서서 앱을 실행시키면 그림 속 AR을 통해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도깨비도 등장하기도 합니다.인포 오른쪽에 있는 역사와 문화의 찰나로 건너가면 고랑포구의 역사적 기록물을 볼 수 있습니다. 홀로골성 축조 방식이나 레크리스의 활약상, 다양한 VR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인포 오른쪽에 있는 역사와 문화의 찰나로 건너가면 고랑포구의 역사적 기록물을 볼 수 있습니다. 홀로골성 축조 방식이나 레크리스의 활약상, 다양한 VR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페러글라이딩 체험장에서 실감나게 체험 중인 관람객들, 연천의 절경을 이용하여 이런 체험을 하는 것은 매우 좋지만 시간과 기계의 대수가 많지 않아 관람객들이 많이 몰릴 때 줄을 서는 시간이 매우 길다고 생각합니다.황포돛대 VR 체험도 가능하며 홀로골성을 지키고 활쏘기 VR 체험 등이 가능합니다.2층으로 올라가면 오감의 찰나라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홀골 팡팡 놀이터라고 합니다. 강 건너 성곽 등반, 성내 요소 이동 등 놀이시설을 모두 니트로 만든 점이 독특합니다. 아이들은 매우 기뻐할 것 같네요. 철없고 무게만 있는 어른들이 타고 놀아서 시설이 부서지지 않기를 바랍니다.역사 공원이긴 하지만 역사물이라는 것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외, 특히 자료가 없는 상황 보드와 디오라마 형식으로 장식되어 있는 게 여기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렌 가와 후 루온 나미 우라구 역사 공원 주소:경기도 연천군 장남 면 장남로 270전화:031-835-2002관람 시간:10:00~18:00휴관일:매주 월요일, 설날, 추석 당일 1월 하루 관람료:어른 5,000원/청소년 4,000원/아이 3,000원연천홀로골홍보관&홀로골고랑포구 역사공원 관람을 마치고 고구려의 역사를 간직한 홀로골 성터로 이동하였습니다. 두 곳의 거리는 버스로 5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입니다.역시 북쪽으로 온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의 또 하나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 시대 유물 중에서 보기 힘든 고구려의 역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천에는 고구려 3대 성지가 있습니다. 연천 도우라 성 은 오자토 성, 호로 골 성 3개의 성터가 있지만 오늘은 연천의 남서 투어이어서 홀로 골을 둘러봅니다. 사적 제467호인 연천 호수로 골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하천의 역할을 한 장소에서 임진강 유역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락의 요충지였습니다. 임진강은 삼국 시대에서 호로 딴, 술탄, 호로 하 등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호로 골은 홀로 자신의 근처에 있는 옛날 성이라는 뜻이래요. 성을 의미하는 고구려의 말이다”홀”에서 “홀로”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한가지 설은 임진강이 돌아 흐르는 모습이 마치 표주박의 호리병처럼 보인다는 것으로 조선 시대에는 표주박, 표주박으로 불리며 폴로구의 인근 성이라는 것에서 폴로 고루 하고 있던 것이 오늘에야 포장(혹은 웅장골)로 됐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차를 주차하고 언덕에 조금 올라가면 홍보관과 광개토 대왕비에 만납니다. 홍보관에는 5~7세기 동안 삼국 시대 상황과 속속 발굴 조사 내용을 전시하고 있어 외부에 있는 이 광개토 대왕비는 놀랍게도 남북 사회 문화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서 시멘트 덩어리로 제작되는데 여기에 전시된 것입니다.아주 빠른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같이 가려고 하니까 사진이 안 나오고 사진만 찍자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어쨌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홍보관 한쪽 창문으로 본 홀로골 동벽의 모습입니다. 마치 액자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홍보관을 나와서 동벽 쪽으로 접근합니다. 멀리서는 그냥 흙으로 된 언덕 같지만… 삼국이 일시적으로 점령했기 때문에 각기 다르게 축조되고 보수되었다는 성벽의 모습은 어떨까요?여기가 현무암 절벽이 발달한 지역에서 다른 성벽에서는 그리 못 보는 현무암 덩어리로 성벽을 쌓는 것도 드물어요. 성터를 발굴 조사한 결과 총 4차례 보수한 흔적이 발견되었답니다. 우선 판을 측면에 대고 성을 쌓은 초기 백제계의 축성 법, 이어 판축의 외측에 돌을 쌓고 자갈로 구성된 고구려 계통의 돌담, 그리고 돌의 바깥쪽 하단에 돌기단을 실은 신라계의 축성 법이 속속 나타나고 백제·고구려·신라가 이 지역에서 각축을 벌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성벽의 주위는 약 400m로 동벽의 정상부와 서쪽 끝에 장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이곳이 현무암 단애가 발달한 지역으로 다른 성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무암 덩어리로 성벽이 쌓여 있는 것도 드물죠. 성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총 4차례에 걸쳐 보수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먼저 판자를 측면에 대고 성을 쌓는 초기 백제계 축성법, 이어서 판축 바깥쪽에 돌을 쌓고 자갈로 쌓은 고구려계 축성법, 그리고 석축 바깥쪽 하단에 돌기단을 쌓은 신라계 축성법이 차례로 나타나 백제·고구려·신라가 이 지역에서 각축을 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벽의 둘레는 약 400m이며 동벽의 정상부와 서쪽 끝에 장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조선 시대에는 포장 석탄이라는 장단을 지나 개성에 들어가주요 거리였고, 한국 전쟁 때는 북한군의 주력 전차 부대가 개성을 지나 원산 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우회하면서 여기서 강을 건넌 지점이기도 합니다. 사진의 왼쪽 강가가 남벽, 사람들이 서는 사람이 성내입니다. 성내에서는 전 삼국·고구려·통일 신라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토기 조각을 비롯한 고구려의 빨간 색의 잔해, 주먹 도끼, 숫돌, 가락 바퀴 등 선사 시대 유물까지 출토했대요.성벽에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하얀 화강암으로 계단을 두었습니다. 원래의 성을 그대로 두지 않고 이렇게 모양을 바꾸는 것이 문화재 보존의 문제로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녹색 풀과 흰색 화강암 계단이 멋지게 어울립니다.성안에서 동벽을 향해 바라본 모습입니다. 오래전 전쟁의 흔적은 희미하고 지금 이 순간은 오직 고요하고 평화만이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성안에서 동벽을 향해 바라본 모습입니다. 오래전 전쟁의 흔적은 희미하고 지금 이 순간은 오직 고요하고 평화만이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성내 끝에는 북쪽 땅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망향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우리가 이곳 탐방을 마치고 나오자 강변에는 여러 대의 포크레인이 토지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철조망에 지뢰 표지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지뢰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래전 상공에서 뿌려지거나 강물에 흘러 땅속 깊이 묻혀버리기 때문에 관람객들도 주의 표시를 잘 따라야 합니다.우리가 이곳 탐방을 마치고 나오자 강변에는 여러 대의 포크레인이 토지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철조망에 지뢰 표지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지뢰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래전 상공에서 뿌려지거나 강물에 흘러 땅속 깊이 묻혀버리기 때문에 관람객들도 주의 표시를 잘 따라야 합니다.삼국의 전쟁 얘기는 까마득한 옛날 얘기여서 잘 실감이 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행이 먼저 퇴장하고 가장 후미에서 돌아오는데 훨씬 먼 곳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물을 건너 이곳을 치고 성 안으로 들어가려는 무리와, 성 위에서 그들을 막으려는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때도 같은 민족이었던 것의 이 땅의 사람들이 서로 싸워서 이겨야 했고 지금도 그 싸움을 끝내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는 것으로 오늘의 이 침묵은 마음 속에 어떤 소용돌이를 만드는지 답답할 뿐입니다. 호로 골&호로 골 홍보관 주소:경기도 연천군 장남 면 장남로 163번 키 128관람 시간:하절기(5~10월)오전 10시~오후 6시/동기(11월~4월)오전 10시~오후 5시 휴관일:1월 하루, 추석연천시티투어연천이 지역 특성상 관광 방문하기 쉬운 곳이 아니라 관광지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개별 자가용 여행도 편한데요, 곳 곳에서 차의 통제와 검문도 가능하므로 여러가지 불편 없이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연천 시티 투어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대가 오면 세계에서 유일한 생태 보고 관광이 된 DMZ, 삼국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장소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있는 연천, 부담 없이 하고 오세요.연천이 지역 특성상 관광을 위해 방문하기 좋은 곳은 아니며 관광지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개별 자가용 여행도 편하지만 곳곳에서 차량 통제와 검문도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함 없이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연천 시티투어 상품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시대가 오면 세계에서 유일한 생태보고 관광이 될 DMZ, 삼국시대 역사와 문화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천, 부담없이 다녀오세요.연천 시티 투어 버스 출발:1)서울:공덕 역(5호선, 6호선 경의 중앙선, 공항 철도)3번 출구 9시 2분)고양 시민 및 북부 지역:정 발산 역(3호선)2번 출구 10시 운행 일:5월 10일부터 매일/매주 화요일, 설날, 추석 운휴 신청:성명, 생년월일, 연락처를 [email protected]에 투어 2일 전까지 신청하다 참가비:대인 15,000원, 청소년&고양 시민 12,000원(기념품 일병 건빵)을 포함하지 않는다:점심비, 여행 보험문:DMZ-651)연천시티투어버스 출발: 1) 서울: 공덕역(5호선, 6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3번출구 9시 2분) 고양시민 및 북부지역: 정발산역(3호선) 2번출구 10시 운행일: 5월 10일부터 매일/매주 화요일, 설, 추석 운휴 신청: 성명, 생년월일, 연락처 [email protected]에 투어 2일전까지 신청 참가비: 어른 15,000원, 청소년&고양시민 12,000원 (기념품 일병건빵) 미포함: 중식비, 여행보험문: DMZ-651)